매년 도심에 핀 꽃이 이제껏 알던 식물 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떨까. 최근 북미에서 식충식물의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 식물전문가들은 식충식물 생물학에 중요한 부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새롭게 발견된 식충식물인 트라이안타 옥시덴트리스(T. occidentalis). 1879년 문헌 수록 후 올해 식충식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Danilo Lima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와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공동연구진은 “새로운 식충식물인 트라이안타 옥시덴트리스(학명 Triantha occidentalis)을 발견했다”며 국제 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자세히 게재했다.
태평양 연안 도심 근처 서식…140여 년 만에 정체 확인
트라이안타(Triantha) 속(Genus)은 그리스어로 ‘False asphodel(가짜 수선화)’이라고도 부른다. 현재까지 알려진 종은 4개. 하나는 일본 고유종이고 다른 셋은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걸쳐 북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주요 도심과 근접한 곳에 분포한다.
다른 식충식물과 마찬가지로 영양분이 부족하고 볕을 잘 받는 습지 환경에 서식한다. 연구진은 캐나다 컬럼비아주 인근 산에서 자라는 표본을 조사했다.
이번에 연구를 위해 수집된 종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사이프레스 주립공원 습지에 서식하고 있다. ⓒQianshi Lin
T. occidentalis가 이번에 식충식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다년생 초본류로 알려져 왔다. 1879년에 미국 식물학자 세레노 왓슨이 처음 발견했다. 처음에는 꽃창포 과(Family)의 꽃창포(Tofieldia) 속으로 분류했지만 1918년에 트라이안타(Triantha) 속으로 정정했다.
꽃차례는 구형이거나 난형(달걀 형태)으로 3송이씩 달리고, 꽃색은 흰색이거나 황색이다. 1~3개 정도의 잎이 달린 줄기는 여름에 최대 80㎝ 높이까지 곧게 자란다. 줄기에는 끈적한 붉은색 액체가 묻어 있는 작은 털(선모)이 있다.
논문 주저인 린 치안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은 “이 식충식물은 특이하게도 곤충을 줄기에 가둬두는 방식을 취한다”라고 말했다.
T. occidentalis는 잎이 1~3개로 적고 직립한 줄기에 털이 나 있다. 희거나 연한 미색인 꽃이 3송이씩 달린다. ⓒDanilo Lima
줄기가 덫인 식충식물…소화효소로 영양분 흡수
T. occidentalis가 식충식물이라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식충식물에서만 나타나는 유전자 소실 때문이다. 식충식물이 육식으로 진화하면서 많은 유전자 소실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소실 유전자 중에서 광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포함된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한 에너지 생성 과정 중에 특별한 환원효소가 필요하다. 페레독신?플라스토퀴논 환원효소 복합체로 전자의 흐름을 제어한다. 벌레잡이주머니로 곤충을 섭취하는 통발과(Lentibulariaceae) 식충식물은 이 효소 복합체와 관련한 유전자가 없다. T. occidentalis도 유전자가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좀 더 확실한 입증을 위해 초파리를 제공하고 식물로의 영양분 이동을 추적했다. 질소 동위원소 ‘15N’을 사용해 식물이 곤충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지 여부를 관찰했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은 선모에 작은 파리 등이 붙어 있는 모습. 연구진은 육식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식충식물로 추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Qianshi Lin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초파리 제공 후 질소 동위원소와 농도가 크게 증가했다. 열매 질소함량도 1.5%에서 2.6%로 증가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개화한 줄기에서 일어났다. 먹이 공급 후 일주일이 지나자 질소 함량이 두 배 정도 증가했다. 그리고 2주 후에는 처음 상태로 감소했다.
연구진은 “식물이 질소 획득 후 열매나 종자 성숙 등에 활용된 후 다음 해 번식을 위해 뿌리 쪽에 이동시킨다”고 말했다. 영양분을 뿌리에 저장하는 체내전이(retranslocation)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다른 종류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비슷하게 먹이에서 약 64%의 질소를 얻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토양에서 흡수하는 질소량은 일반 식물과 비교해 T. occidentalis의 흡수량이 적었다. 부족한 질소량을 벌레로부터 얻는다고 풀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형광물질 염색에 반응해 녹황색을 띤 포스파아제가 분비된 선모 ⓒQianshi Lin
T. occidentalis가 식충식물인 또 다른 증거는 선모에서 분비되는 가수분해효소인 ‘포스파타아제(phosphatase)’의 존재다. 연구진은 효소와 반응하는 형광물질로 염색했다. 그러자 녹색의 형광을 나타내면서 T. occidentalis도 포스파타아제가 인을 포함한 영양분을 분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분과 먹이 포획 충돌 최소화한 ‘꽃과 줄기 덫’
T. occidentalis의 특이한 것은 줄기 덫과 꽃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이다. 다른 식충식물은 꽃과 덫의 거리를 멀리 떨어뜨린다. 수분(pollination)과 먹이 포획의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연구진은 T. occidentalis가 육식과 수분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런 부분에 진정한 식충식물인지 의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뭔헨 국립식물컬렉션(State Botanical Collection) 식물학자인 안드레아스 플라이슈만 박사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식충식물이 능동적으로 먹이를 획득한다면 이 식물은 꿀을 먹으러 온 곤충이 줄기 덫에 걸리게 하는 ‘수동적 살인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잎이 좁고 평행한 단자엽 식물이 식충식물로 진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다.
톰 기브니시 위스콘신?매디슨대 생물학과 교수는 “선모의 끈적거림이 약해 파리나 작은 곤충에게는 유효하지만 수분 매개자 역할을 하는 나비나 꿀벌에게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으로 추정된다”며 선모의 접착력, 먹이의 종류 등의 연구 필요성을 제시했다.
트라이안타 속의 (왼쪽)T. glutinosa와 T. racemosa ⓒ위키피디아 | Masebrock
이번 결과로 트라이안타 속의 나머지 3종도 식충식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캐나다 앨버타대는 트라이안타 글루티노사(T. glutinosa)의 표본 과정에서 작은 곤충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진은 트라이안타 레이스모사(T. racemosa) 등 트라이안타 속의 나머지 종에 대한 추가 조사를 준비 중이다.
연구진들은 식충식물이 도심에서 발견된 것에 놀라워한다. 기브니시 교수는 “대도시 인근에서 서식하지만,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사실은 아직도 더 많은 식충식물이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