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때 트렌드를 따랐다면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과총 과학과기술 인터뷰대담] 선양국 한양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글 : 류준영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차장(과학과기술 편집위원)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개발 방향이 명확하지 않던 초창기 시절이었죠. 당시 인기 있는 연구주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양극소재 설계와 제법의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학계 관심사에 휩쓸리지 않고 양극소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극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 30년. 선양국 교수는 불현듯 울린 벨 소리에 놀라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곤 이 말 한마디로 그의 외롭고 쓸쓸했던 양극소재 연구 외길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선정되셨습니다.” 선양국 한양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국내 과학계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선 교수는 리튬이온 이차전지 양극소재 연구의 선구자로, ‘농도구배형 양극소재’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해 전기차 주행거리와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려 상용화하는 데 기여했다. 농도구배형 양극소재는 쉽게 말해 높은 용량을 발현하는 원료를 내부에 밀집시키고 안정성이 우수한 원료로 외부를 감싸는 기술이다. 용량과 안정성이 상충하는 기존 양극소재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이런 소재를 전기차에 적용하면 1회 충전으로 800∼900 ㎞까지 주행이 가능하며, 20년 이상 사용해도 90% 이상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개척자’ 선양국 교수가 던진 메시지는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 눈에 띄는 게 “학계 관심사는 아니었다”라는 발언이다.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연구의 목적과 취지가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특히 정부가 목돈을 건, 트렌드에 부합한 연구의 유혹은 좀처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연구 철학의 빈곤, 윤리의 부재가 고질화된 상황에서 선 교수는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버텼다. 선 교수는 그간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약 675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농도구배 양극소재 원천기술을 중심으로 333건의 특허도 출원·등록했다. 선 교수는 글로벌 정보서비스 기업 클래리베이트(Clarivate)에서 논문 피인용 횟수 기준으로 분야별 상위 1% 연구자를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 HCR)’에 6년 연속 선정된 바 있다. 이런 성과를 토대로 그가 민간기업에 기술 이전·사업화한 성적표는 총 25건, 137.6억 원 규모에 달한다. 그가 개발한 소재는 기아 ‘니로’, 현대자동차 ‘코나 유럽형’ 등의 전기차 배터리에 탑재돼 있다. 혁신의 바람이 선 교수에게 한 번 더 질문을 던진다. ‘시장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패권 전쟁이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라고. 이에 대한 선 교수의 답은 간단 명료하다. “청출어람. 제가 경험한 연구 노하우와 경험들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끔 독려하는 것이 제 사명일 겁니다.” 수많은 후보가 경합을 벌여 1년에 단 1명을 뽑는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이 상은 탁월한 연구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을 발굴하고 그 공로를 국민에게도 널리 알려 명예와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수여하는 것으로, 2003년 부터 올해까지 총 45명이 수상했다. 대통령 상장과 함께 상금 3억 원이 주어진다. Q.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소감은.A.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상을 수상하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윤석열 대통령님,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님, 그리고 여러 위원님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훌륭하신 연구자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이 상을 주신 것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연구에 매진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드높이는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이러한 영광을 안을 수 있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편안하게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끊임없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내 박은희와 아들 호진, 호현에게도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해오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저를 믿고 불철주야 실험실에서 열심히 따라준 제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장 큰 보람은 혁신소재 개발로 ‘전기차 대중화’ 기여Q. 가장 의미 있는 연구와 성과를 꼽으라면.A. 근 30여 년간 산업계와 학계에 몸담으면서 리튬이온 이차전지 연구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여러 가지 연구 성과물들이 있지만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농도구배형 양극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농도구배형 양극소재는 높은 에너지를 갖는 소재를 안정한 소재로 보호한다는 개념을 적용해 개발한 소재입니다. 값싸고, 성능과 안정성을 모두 갖췄습니다. 현재까지 4세대를 거쳐 진화를 거듭해온 농도구배 양극 소재 기술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에서 요구하는 필수 특성들을 잘 만족시켰습니다. 해당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의 여러 기업들로 기술이전을 하였고, 양산화까지 성공하여 현재에는 여러 전기자동차에 탑재되었습니다.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함으로 인하여 전기자동차의 주행거 리를 대폭 늘리고 전기자동차의 대중화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 유일국 ‘일본’, 불모지 ‘한국’ 쉽게 쫓아올 제조공정 개발보다 독창적 소재 개발에 방점Q. 이차전지 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A. 1991년 소니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 저는 이 배터리가 앞으로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망한 분야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차전지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게 그때였습니다. 1990년대에 전 세계에서 리튬 이차전지를 생산할 수 있었던 국가는 일본이 유일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연구개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불모지였습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저는 앞으로 세계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데 리튬 이차전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면 쉽게 쫓아올 수 있는 제조공정 개발이 아니라, 독창적인 소재 개발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가장 효율적·효과적인 연구전략 단기간 얻어지지 않아…굳센 의지, 조용한 인내 필요Q. 어떻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나.A. 좋은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존 소재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합니다. 간단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연구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깊은 통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는 굳센 의지와 조용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것들은 결코 단기간에 얻어지지 않고 요행으로도 생기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 여러 연구자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해보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결국 자신이 도전한 연구주제에 대해 끈기를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것만이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연구자들, 도전적 목표 품고 우직하게 연구하라”Q. 연구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A. 청출어람(靑出於藍).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미래가 밝기 위해서는 저보다 나은 후학들이 많이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한 연구 노하우와 경험을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끔 독려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청출어람’ 네 글자 안에는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끊임없이 발전과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이런 아이디어는 대개 한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여러 방향으로도 생각해보고 검증해야만 실마리가 보이곤 합니다. 모든 젊은 연구자들이 도전적인 목표를 품고 우직하게 연구하여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들을 만들고 과학기술의 위상을 드높이는 결과를 많이 이끌어내기를 소망합니다. Q. 한국 이차전지 기술·산업이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A. ‘여러분들은 지금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고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갈 가치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리튬 이차전지 분야는 기존의 재료·화학공학과는 또 다른 전기화학 기반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특히 이차 전지는 모든 구성 소재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어서 하나의 분야만을 알아서는 좋은 연구를 할 수 없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전공지식을 공부하고 여러 연구자들과 소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 분야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끈기를 가지고 연구 분야를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도전적인 자세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시도해낸다면 좋은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행거리·충전속도 개선한 배터리 양극소재 개발이 다음 목표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목표는.A. 전기차 시대의 본격 개화를 앞두고 이차전지 시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이차전지 산업은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이차전지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한·중·일 간 배터리 패권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소재 기술을 갖춰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주행거리 걱정 없고 빠르게 충전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위한 혁신적인 양극소재 개발과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저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노력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 하고 우리 후손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이차전지 연구에 전력투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차전지 양극소재 전문 국제학회·한양배터리센터 등 설립 배터리공학과 개설… 인재 양성의 요람 만들 것Q. 이차전지 양극 소재 전문 국제학회 설립, 한양배터리 센터 건립 등 산·학 협력 활성화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배터리 분야 산·학·연 활성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A. 현재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이차전지 주도권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초 소재 기술의 이해를 밑바탕으로 산·학이 연계해 함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세계 석학들과 국내 기업 개발자들이 양극소재에 대해 서로 협력하고 토론할 수 있는 이차전지 양극소재 전문 국제학회를 설립해 교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술 교류뿐만 아니라 기초연구와 산업 현장 기술의 교류를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한양배터리 센터를 건립했습니다. 기초소재 기술 연구와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세부 기술에 대한 자문과 융합적 솔루션을 제공하여 산·학·연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제 학회 개최도 필요하고 산·학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올해 배터리공학과라는 대학원 학과를 개설했는데, 미래 이차전지 에너지 기술을 선도할 최정상급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해보고자 합니다. 배터리공학과 교수진의 통찰력과 이차전지 선도 기업들의 투자, 정부 지원의 삼박자가 갖추어져 인력 양성을 위한 각종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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