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검은 토끼의 해를 기념하듯(?), 올해 과학계에는 달 탐사 미션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때 처음 등장한 mRNA(전령RNA)의 개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023년 주목할 만한 과학 이벤트들을 추려 소개했다.
mRNA 백신의 본격 활약
▲ mRNA 백신의 작동원리.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스파이크단백질의 유전정보를 담은 mRNA는 사람의 세포로 들어가 스파이크단백질을 만든다. 이를 바이러스 침입으로 착각한 인체는 스파이크단백질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mRNA(전령RNA) 백신’이라 불리는 생소한 물질이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백신 경쟁의 결승점을 먼저 통과했다. 2020년 11월 독일의 바이오엔테크와 미국의 화이자가 공동개발한 BNT162b2가, 12월 미국의 모더나와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가 공동개발한 mRNA-1273이 각각 FDA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두 종류의 mRNA 백신이 전통적인 백신들을 따돌리고 개발 속도 면에서 가장 앞서 나갔다. mRNA 백신은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더라도 가장 빨리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mRNA가 백신으로 사용된 것은 코로나19가 첫 사례이다.
코로나19로 처음 세상에 등장한 mRNA 백신은 이제 다른 질환을 예방하는 도구로도 진화하고 있다. 바이오엔테크는 말라리아, 결핵, 생식기 헤르페스 mRNA 백신에 대한 최초의 임상시험을 곧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는 공동 연구를 통해 대상포진에 대한 mRNA 백신 후보물질을 임상시험 중이다. 또한 두 기업은 지난 11월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를 동시에 예방하는 mRNA 백신의 1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이 복합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사스코로나바이러스-2)와 변이체인 오미크론 및 4가지 인플루엔자 변종에 대한 감염 예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비강 스프레이를 활용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진행 중이다. 동물 실험에서는 효과성을 나타냈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어떤 결론을 보일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가장 정밀한 우주의 3D 지도 그린다
▲ 유럽우주국(ESA)이 올해 발사 예정인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의 모습. ⓒESA
2022년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놀라운 발견이 잇따르며 바쁜 한 해였다. 올해 역시 제임스웹의 위대한 발견은 계속된다. 이와 동시에 지상과 우주에서 역사상 가장 정밀한 우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미션도 시작된다.
유럽우주국(ESA)은 우주의 탄생과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한 유클리드(Euclid) 우주 망원경을 9월 발사할 예정이다.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목표를 가진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우주 시공간의 기하학을 결정하기 때문에, 기하학자인 수학자 유클리드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제임스 웹이 머물고 있는 라그랑주2 지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최소 6년 동안 궤도를 돌며 가장 정밀한 우주의 3차원 입체 지도를 그려낼 예정이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암흑물질 연구”)
이와 동시에 지상에서는 칠레에 완공된 베라 루빈 망원경이 하늘 전역의 지도를 그린다. 이 망원경은 우주 암흑물질의 증거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천문학계의 ‘대모’ 베라 루빈 박사의 이름을 땄다. 지름 8.5m 크기의 이 망원경은 올해 7월 관측을 시작한다. 32억 화소의 이미지 센서를 갖춘 광시야 망원경으로 남반구 하늘 전체를 단기간에 초고해상도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중국 신장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전파 망원경인 ‘치타이 전파 망원경(QTT)’도 올해 가동을 시작한다. QTT는 구경이 110m에 이르며 모든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다. 단 3일 만에 남반구 하늘 전체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병원체 감시목록 수정해 미지의 감염병 ‘질병 엑스(Disease X)’ 대응
▲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의 우선순위를 정해,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유도하는 ‘병원체 감시목록’을 상반기 내 발표할 예정이다. ⓒGettyImages
세계보건기구(WHO)는 향후 발병 가능성이 높은 병원체(pathogen)의 감시 목록(watchlist)을 상반기 내 수정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WHO는 지난해 11월 병원체 감시목록을 수정하기 위해 과학자 300명 이상을 모았다. 이들은 25개 이상 바이러스군 혹은 박테리아 분야 전문가들이다. 모든 병원체를 연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우선순위를 작성하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하자는 목적이다. ‘넥스트 팬데믹’을 유발할 수 있는 미지의 감염병 질병 엑스(Disease X)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재 WHO의 병원체 감시목록에는 코로나19, 에볼라 바이러스, 라사 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리프트 밸리 열, 지카 그리고 질병 엑스 등 9가지의 감염병이 올라와 있다.
지구의 달과 목성의 ‘달’을 본격 탐사
▲ 유럽우주국(ESA)은 목성의 주변을 도는 3개의 위성 연구를 위한 JUICE 미션을 4월 시작할 계획이다. ⓒESA
지난해 미 항공우주국(NASA)은 ‘스페이스 론치 시스템(SLS)’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달에 발을 내딛기 위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첫 단계였다. 우리나라도 한국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를 마침내 달의 품에 안겼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류의 달 탐사 경쟁은 뜨거운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발사된 아랍에미리트(UAE)의 초소형 로버 ‘라시드(Rashid)’와 일본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ispace)가 추진해 온 ‘하쿠토-R 프로그램’ 미션1 착륙선이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한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는 오는 6~7월 중에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를 발사할 계획이다. 앞서 2019년 찬드라얀 2호는 궤도선 진입은 성공했지만, 달 착륙선을 실패한 바 있다. 한편, 스페이스X는 ‘디어문 프로젝트’를 통해 최초의 민간인 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스타십 우주선을 타고 달까지 갔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6일간의 여정에 함께할 민간인 8명의 명단에는 0가수 빅뱅의 탑(최승현)도 포함되어 있어 화제를 모았다.
한편,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행성인 목성의 ‘달’을 탐사하는 미션도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주스(JUICE?Jupiter Icy Moons Explorer)다.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얼음 위성 유로파 지하에 있는 바다의 존재를 확인했다. 주스는 4월 지구를 떠나 8년 뒤인 2031년 목성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리고 약 2년 반 동안 목성 주변을 맴돌며 위성을 관찰한다. 행성이 아닌 그 위성 곁에 머무르며 궤도를 돌며 관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도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 승인 임박
▲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유전적 빈혈 치료제가 이르면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을 전망이다. ⓒFlickr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가 올해 첫 승인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바이오기업 버텍스(Vertex)는 오는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 ‘엑사셀(exa-cell)’의 승인 신청을 할 계획이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은 적혈구 모양이 낫(겸상) 모양으로 되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이탈리아 산라파엘대 연구진은 겸상적혈구빈혈증과 지중해 빈혈(탈라세미아)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임상 결과에 따라 첫 유전자 가위 치료제의 승인이 결정된다. 치료는 환자의 줄기세포를 채취하고, 결함이 있는 유전자 부위를 교정한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 권고안 제시
▲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개막식의 모습 ⓒFlickr
지난해 11월 이집트 샤름 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 조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탄소 배출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은 이는 기후위기 시대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았지만, 당시 합의에서 기금의 재원 마련과 운영 방안에 대한 세부사항은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 준비 위원회(transitional committee)가 보상 기금 마련 방안을 구성하고 있으며, 2월 말 권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결과는 1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릴 COP28에서 전 세계 대표들에게 제시됐다.
표준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물리학
▲ 뮤온 g-2 실험의 핵심 장치인 뮤온 저장 고리 ⓒFermilab
미국 페르미연구소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뮤온 g-2 실험의 첫 결과를 2021년 4월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도 참여했다. 현대물리학의 정수인 표준모형은 아원자(원자보다 작은 입자)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우주를 이루는 쿼크, 전자, 뮤온, 중성미자 등의 기본입자와 중력을 제외한 세 가지 힘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서술한다.
뮤온은 이러한 아원자 세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강력한 자기장 하에서는 뮤온의 자석 축이 팽이처럼 흔들리고, 이 흔들림은 g값으로 표현된다. 뮤온은 진공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수한 가상입자들과 상호작용하므로, g값도 그 영향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표준모형을 이용해 이 g값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만약 진공에 우리가 모르는 입자나 힘이 있다면, g값은 예측과 달라진다.
뮤온 g-2 실험의 첫 1년간 운행한 데이터를 분석한 2021년의 결과는 뮤온이 현대물리학의 예측과 다르게 행동함을 신뢰도 4.2시그마로 입증했다. 4.2시그마는 과학적 발견 기준인 5시그마에는 못 미치지만 강력한 증거다. 이 결과가 통계적 오차로부터 기인했을 확률은 4만 분의 1에 불과하다. 물리학자들은 올해 뮤온 g-2 실험의 더 정확한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과학원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는 장먼시 지하 700m 깊이에 위치한 장먼 지하 중성미자 관측소에서 중성미자의 진동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 가장 강력한 선형 양성자 가속기인 유럽파쇄원(ESS)이 가동을 시작한다. 표준 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적 지식이 쓰일지 귀추를 모은다.